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는 아빠에게 여섯살 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때까지 아빠에게 말 한마디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고민에 빠져 있던 아빠가 직장동료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직장 동료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럴 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 같은데 가서 함께 재미있게 놀아보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아빠는 모든 것 제쳐두고 그 아들을 데리고 동물원 나들이를 갔다. 아들이 동물을 한참 구경을 하는데, 저 쪽에서 사자가 우리를 뛰쳐나와 아빠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접근하고 있었다. 아들이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 얼른 피하세요!”
그때, 아빠가 아들에게, “야 임마!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왜 지금까지 안하고 살았어!” 그랬더니, 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절박한 순간이 없었잖아요!”
절박함은 위기도 될 수 있지만, 새롭게 되는 유익함도 있다. 부도의 위기에 처했던 어느 회사 사장이, 회사 직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회사가 절박한 상황에서 새롭게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앙생활 중에도 마찬가지다.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모든 것 제쳐두고 40일 철야기도, 1주일 금식기도를 한 경험이 있다.
신앙인들은 절박하면 모든 분주한 일들 제쳐두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찾는다. 절박한 상황은 말씀에 파고들어 답을 찾는기회다.절박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금식기도 철야기도를 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것이 절박함의 유익이다.
믿음의 인물들에게는 누구나 예외 없이 절박한 순간들을 잘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 절박한 순간을 주님을 붙잡는 기회로 잡은 사람들이었다. 최근 우리 교회 식구들 중에도 절박하게 기도를 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분이 있다. 그래서 “기도는 간절히 해야한다”고 스스로 경험담을 통해 강조했다.
밥 소르기의 말처럼, “절박함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 예수전도단, 2015, 67쪽). 신약 성경에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낫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군중을 헤치고 뚫고 들어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올여름 우리교회 중요한 행사인 IKC가 약 45일 앞으로 다가왔다. 절박한 심정으로 각 목장별로 맡겨진 지역에 들어가 아이들을 초청해 보자. IKC가 달라지고, 여러분과 교회가 달라질 것이다. p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