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016
564.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을 때”(2)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만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을 때’ 구체적인 선택과 결단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는 글이 있어 지난 주에 이어 그 두 번째로 후반부를 올려 드립니다.
[비중이 같은 선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에는 손해 보는 쪽을 택합니다. 예를 들어 두 교회에서 동시에 담임 목사 초청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디로 보내셔도 순종하겠다는 빈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일정 기간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히 들리지 않으면, 손해 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이 들려 주시고 계시는 음성을 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택 사이의 갈등은 전도할 때에도 경험합니다. 요즈음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에 섣불리 믿음에 관해 얘기를 꺼내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상대방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열릴 때까지 섬기기만 할 것인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저는 거부감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복음 전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준비해 놓은 사람인데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오는 갈등은 사회생활에도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마태 5:39-42), 사회생활에서 양보하는 것이 성도로서의 삶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양보하면 상대방을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과 가족에게 파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에는 무리한 요구를 거절해야 하고, 불의한 요청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깁니다. 양보할 것인가, 권리 주장을 할 것인가? 이러한 기로에 서게 되면 저는 양보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주님께서 내 대신 싸우시도록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선택만 하면서 사는 삶보다, 실수를 범하더라도 순종하는 삶을 하나님께서는 더 기뻐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출처: 최영기,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을 때,” 가사원 원장코너 145번.).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하시고 은퇴 하신 목사님의 신앙경험을 통해서 후배들에게 주시는 글입니다. 다소 긴 글을 두 번에 걸쳐서 올려 드렸는데 신앙생활 속에서 자주 만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참고자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