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 익은 씨앗, 설 익은 씨앗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랄 때 경험이다. 가을 추수 때가 오기전에 추석이 먼저 도착한다.
추석이 되면 가능하면 햇곡식으로 추석 밥상 차림을 했다. 추석 기념으로 벼 이삭을
한 다발 베어서 햇곡식으로 상을 차렸다. 나는 궁금했다. 벼를 베는 김에 모두 베어서
타작을 하면 될 것을 왜 꼭 한 다발 정도만 베어서 추석 밥상 차리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아직 서리를 맞지 않아서 추수하기 이르다는 것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얼마 있다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서리를 맞은 벼들이 완전히
익어서 결국 나중에 씨앗으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서리를 맞지 않은 씨앗은 다음해
모내기용 씨앗이 못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다. 얼마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런 농사 전문가들을 통하여 배운 것은, 사람도 다 자랐다고 모두 익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살면서 서리와 같은 시련을 통해서 속까지 알차게 익은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던가 보다. 사람도 서리와 같은 고난을
통과한 다음에 재 생산할 수 있는 종자씨가 될 수 있다. 성경은 사람도 종자씨가 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것을 부활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약 두 달 전에 뿌린 씨앗이 지금까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가을에 완전히 익지
못한 씨앗을 다시 심었기 때문이었다. 겉 모습 보기에는 멀쩡히 다 크고 익은 씨앗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덜 익은 씨앗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다시 싹을 내는 경우가 있고,
싹을 틔우지 못한 채 썩는 경우도 있다.
다시 싹이 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주 안에서 완전히 익은 씨앗이어야 한다. 부활의 사람은 그 안에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 때 완전히 익은 씨앗이 된다.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인간이
되려면 그 안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하늘에
속한 몸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만 살다 싹 못 틔우는 설 익은 씨앗이 되고 만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고전 15:35-36).
김상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