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4, Sunday
Winning Soul Ministry
Louisville, Kentucky
Sanghun Kim/Saehan Church of Lou.
예수님께 드리는 예물 (2);
깨어진 심령
마가복음14:3-9
-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지난 주 중에 한국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 이라는 말들이 뒤섞여서 <속보 뉴스>라는 제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이렇게 뉴스를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게됩니다. 왜 그럴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짐장할 수 있기때문이다.
저도 오늘 마가복음 14:3-9절의 말씀을 대하면서, 그 당시(AD 30년, 4월 13일)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하는 <속보 뉴스>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보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그 유명한 예수님이 베다니에 사는 나병환자였던 시몬의 집에서 머물고 계실 때, 어느 여인이 나타나더니 매우 비싸고 순도 높은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그 향유가 자그마치 300데나리온이나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향유의 분량은 일반노동자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분량이라는 것이다. 꽤 많은 분량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나드 향유는 고대에 매우 값지고 귀중한 향수로 사용되었던 물질이다.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라는 나드(Nardostachys jatamansi)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기름이라고 한다.
나드 향유는 매우 강하고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고, 그 향기는 따뜻하고 향긋하며 약간의 톡 쏘는 냄새가 특징이라고 한다.
나드 향유는 고대에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는데, 이는 그 추출 과정이 어렵고, 식물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드 향유는 주로 귀족과 왕족들이 사용하던 고급 향수로, 중요한 의식이나 특별한 행사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나드 향유가 오늘 등장하는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이다.
거기다가 더 놀라운 것은, 그 귀중한 향유를 넣어둔 그릇이 옥 보석으로 만든 ‘옥합’이라고 하는데,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라는 분의 머리에 부어드렸다고 한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옆에서 보고 있던 유다라는 사람이 그 녀의 그 행동을 보고 매우 나무랐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그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을 뻔 하였는데, 어찌하여 그 향유를 낭비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다의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이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위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유다야, 그녀를) 나무라지 말고 가만히 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30년 4월 13일, 복음기자, 마가)
이렇게 속보 뉴스가 뜨면, 많은 전문가들이 그 뉴스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일반인들에게 그 의미에 대하여 설명해주곤 한다.
오늘 저도 이 사건을 속보로 듣고, 그 속보의 내용을 해석해 보고, 그 사건을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나눠보고자 한다.
저자 마가라는 기자가 이 사건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 속에서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희생적인 헌신을 보여준다.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부은 행동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하여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물(선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깨뜨림의 신앙이다 (3절)
마가복음 14:3에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렸다. 여기서 "깨뜨리다"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직역: 부수다, 깨뜨리다, 부서지다. 이 단어는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부수거나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물리적 파괴 외에도 상징적 혹은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전적인 헌신, 희생, 또는 인간의 깨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가 깨지고, 교만이 깨지고, 죄의 속박이 깨지는 때는 언제인가? 예수를 진정으로 만날 때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을 때다. 그리고 그 예수를 개인적으로 깊은 만남이 있을 때다. 오늘 그 주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축복한다.
이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후에 자아와 교만이 깨어진 것을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주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상한 심령이었을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옥합을 부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존경을 표현하며, 다시는 그 옥합을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그녀의 희생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매우 값비싼 향유 300데나리온 (나드 한 근, 약 327.45그램, 11.5 온스) 정도)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예수님께 드렸다(3절). 이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치는 헌신의 자세를 상징한다. 그녀는 계산적이거나 타산적이지 않았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리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깨뜨림은 예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보여준다. 비록 제자들이 여자의 행동을 낭비로 여겼으나(4-5절), 예수님은 그녀의 헌신을 기뻐하셨다(6-8절).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이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주변에서 우리가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일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비난하거나 나무란다 해도, 그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지금 여러분과 저는 주님께 대하여 가장 중요하고 헌신적인 선물(예물)을 드리고 있다고 믿으시기 바란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였고…” (막14:8)
또한 그녀의 최선을 다하는 행동에서, 우리도 예수님께 최선을 다해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자. 이번 성탄절에 주님께 드리는 선물은 무엇으로 드려야 하나? 최선을 다하여 예배 드리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깨뜨림은 곧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깨뜨림의 신앙이란?
1. 곧 희생을 동반한다 (6절)
여인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제자들 포함)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옳은 일을 실천했다.
이는 진정한 사랑과 예배는 세상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때로는 희생과 오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녀를 괴롭게 하느냐?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4:6)
2. 깨뜨림은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믿음이다(8).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기 6일 전에 있었다. 그 전부터 예수님께서 곧 겪으실 죽음을 듣고, 그 분의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그래서 그 때까지 옆에 따라다니던 제자들마져도 모르고 있었던 예수님의 죽음을 그녀는 얼른 알아차리고 장례식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을 칭찬하셨다.
“그녀는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내 몸에 향유를 부었느니라.” (마가복음 14:8)
나 자신을 깨뜨림은 곧 주님과 함께 죽음을 선포하는 믿음이다.
3. 깨뜨림은 영원히 기억된다 (9절).
예수님은 여인의 깨뜨리는 행동을 칭찬하며, 그녀의 이야기가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함께 기억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진정한 헌신은 규모나 결과가 아닌 자신을 깨뜨림으로 마음의 순수성과 사랑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해온 크고 작은 헌신과 섬김과 봉사가 자신을 깨뜨리는 신앙으로 쏟아 부은 것이라면, 순수한 나드 향유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목장이 풍겨내는 향기가 날 것이고, 동시에 기억될 것이라고 믿는다.
“온 세상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억하리라.” (마가복음 14:9)
깨뜨림의 신앙은, 주님의 이름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 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란다.
결론:
깨뜨림의 본은, 이미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일찍이 십가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깨뜨리셔서 우리에게 순전한 보혈을 흘려 부어 주심으로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순수한 마음과 몸을 드리되 몸을 깨뜨려 부수어 드리는 마음, 다른 말로 표현하면, 깨어진 심령, 상한 심령을 이번 성탄 예물을 드려보자.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아멘.
[설교 후 찬양] <겸손히 주를 섬길 때(212장 1,4절)>
[헌신과 결단의 기도] (다 함께 일어서서)